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속 배경이 되는 곳을 직접 거닐어 보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헌데 특히 장르문학이나 장르영화의 경우 주로 외국 작품들이 많아 장르 쪽으로는 그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의 경우는 서울이나 경기 거주자라면 쉽게 소설의 배경이 되는 남한산성을 찾아가볼 수 있겠지만, 추리소설이라면? 글쎄요... 셜록 홈즈의 하숙집이 있는 베이커 스트리트 221B를 가기 위해 영국까지 갈 수 없는 노릇이지요. 물론 제 국내 추리소설 독서 경력이 일천해서 실재하는 지역을 상세하게 기술하여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국내 작품을 찾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런 작품을 찾아내었습니다. 실제하는 지역을 상세하게 기술하여 작품의 배경으로 삼아 독자의 머리 속에 인물들의 동선까지도 상세하게 제시하는 작품을 찾아낸 것입니다. 바로 <마인>이 그 작품입니다.
써놓고 보니 완벽한 자화자찬이군요. 하지만 여기는 판타스틱 편집부 블로그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비록 자화자찬이기는 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자화자찬임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보겠습니다.
판타스틱에서 <마인>을 정식발간 하기 전, 영한문화사에서 나온 1986년 판 <마인>과 조광사에서 1940년에 나온 <마인> 재판을 읽었을 때 제 머리 속에서는 유불란 탐정을 비롯한 <마인>의 숱한 등장인물들이 당시의 경성을 종횡무진 했습니다. 물론 <마인>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낯선 지명들이기는 했지만 개중에는 제 기억 속에 그 위치까지 뚜렷한 지명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낯선 지명들도 간단한 검색을 통해 "아 본정통은 현재의 충무로구나."하고 쉽게 파악할 수 있었죠.
종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종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지라, 또 한때, 아니 요즘도 정독도서관과 교보문고를 비롯한 광화문 시청 일대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이는 지라 <마인>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더욱 친근하게 인지했는지도 모릅니다.
해서 <마인>은 저에게 단순한 추리 소설만은 아닙니다. 당시의 실제 경성을 최대한 활용한 <마인>이란 작품을 매일 매일 신문을 통해 읽던 당시 경성시민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면 왠지모를 흥분이 엄습해옵니다. <마인>의 신문 연재분을 읽으면서 당시 독자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아, 지금 안국동 사거리에서 종로사거리까지 유불란 탐정이 XXX를 미행하고 있단 말이지? 그것 참 흥미진진하군!" 사실 이 추측은 순전히 제 상상일 뿐이지만 제가 <마인>을 읽을 때는 제가 마치 당시의 경성시민이 된 양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마인>을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 이 재미를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전달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우선 제가 먼저 <마인>의 배경 공간을 단순히 머리속으로 복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 발로 직접 걸으며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당시의, 그러니까 1939년의 경성 지도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꽤 괜찮은 두 점의 지도를 구했습니다.
1939년 경성 시가도 입니다.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경성가이드북의 지도
이 두 지도를 입수하여 <마인>에 등장하는 지명들을 짝지어 본 뒤에 현재의 서울 지도에서 그 곳들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두 지도를 그림판으로 능숙하게 편집하여 한문 지명을 현재 지명으로 고치고 <마인>에 언급된 지명을 바탕으로 1939년의 경성을 거닐기 위한 경로를 정해보았습니다.
1939년 경성 시가도를 바탕으로 한 경로
경성가이드북의 지도를 바탕으로 한 경로
그리고 드디어 5월의 어느 햇살 좋은 오후.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 섰습니다.
6번 출구 옆 종로구 관광 안내도
제가 갖고 있는 지도와 비교하면서 어떻게 가야할지를 동행인과 상의했습니다. 첫번째 목적지는 3장 마술사에서 등장하는 K여고로 추정되는 경기여고 옛터, 당시 제일여고로 정했습니다.
3장 '마술사'나 9장 '유불란 탐정'을 보면 유불란 탐정의 자택은 태평로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고 나옵니다. 특히 3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약도를 통해 은근히 암시되지요.
경기여고로 들어가는 골목입니다. 책을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3장에서 경기여고는 약도에도 등장하지요. 그리고 그 곳에서 정말 마술과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이 골목이 바로 3장에 등장하는 바로 그 골목일까요?
이제는 빈 터만 남은 경기여고 옛 터의 정문입니다. 한때 미국 대사관 부지로 지정되어 문화재 유관단체들과 시민들의 큰 반발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빈 터로 남아있네요.
더 올라가면 덕수궁이 나옵니다. 그 전에...
1928년에 세워진 구세군 중앙회관이 보이는군요. 위에 한자로는 구세군사관학교라고 적혀있습니다. 군대를 가야한다면 구세군으로 가고 싶다고 총 대신 종을 들고 적 대신 가난과 싸우고 싶다는 농담으로 주위의 지탄을 받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
본격적으로 덕수궁 돌담길이 나옵니다. 서울 도심 답지 않게 인적이 많지 않고 고즈넉한 것이 정말 분위기 좋더군요. 그런데 부민관으로 가는 길까지 돌아가는 것이 불만이어서 덕수궁 후문으로 들어가려다가 지키는 아저씨에게 한 소리 들었습니다. 결국...
대한문까지 와야 했지요. 시청 앞 서울 광장에서는 뭔가 길다란 천조각을 일광욕시키고 있었습니다. 다시 광화문통(현재의 광화문로)로 거슬러 올라가니 드디어...
부민관, 그러니까 현재의 서울시의회건물이 나왔습니다. 경성에 대규모 공연장이 없던 1930년대 초 경성부(京城府)가 부민(현재의 '시민')들의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경성전기주식회사로부터 100만 원을 기부받아 1934년에 준공한 부립극장입니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한국 최초의 근대식 다목적 회관으로, 1,800석의 관람석과 냉난방 시설까지 갖춘 대강당을 비롯해 중강당·소강당 등에서 연극·음악·무용·영화 등을 공연한 극장이었죠.
바로 이곳 부민관에서 공작부인 주은몽과 거부 백영호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 두 사람의 결혼식으로 인해 부민관 앞뜰에는 '마치 까마귀 떼처럼 몰려드는 자동차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죠. 그리고 웨딩마치 대신 전혀 엉뚱한 곡이 흘러나오고... 비극의 롤러코스터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1945년 7월 24일에는 부민관 폭파 의거가 있었습니다. 동아시아 각국의 친일 거두들, 그러니까 '나 친일 좀 합니다' 하고 자부하는 아시아 각국의 유명인사들이 부민관에 모여 일제에 충성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를 개최한다는 사실에 강윤국·조문기 등의 애국청년단원들이 행사장인 부민관을 폭파했던 사건이었죠. 당시 의거를 주도했던 조문기 옹은 올해 2월 15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민관에서 바라본 광화문로(당시의 광화문통)입니다.
줌을 좀 더 당겨서 담아봤습니다.
부민관에서 바라본 시청(당시의 부청) 건물입니다. 현재 한창 신축 공사를 진행중이더군요.
지하도를 거쳐 길 건너에서 담은 부민관의 전경입니다. <판타스틱> 봄호에 실린 전봉관 교수의 '<마인> 속 경성과 경성문화' 기사에도 당시 부민관 전경을 담은 사진이 실렸었죠. 229페이지입니다.
당시에는 주위를 압도하는 건물이었습니다. 디자인도 그야말로 모던 그 자체였죠. 도로를 질주하는 버스의 모습들도 현재의 기준으로 볼때 범상치 않습니다. 이 곳(http://blog.chosun.com/wook1234/662248)에서도 40년대 초반의 부민관과 주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청 앞 광장에서는 모종의 행사가 준비 중이었습니다. 하늘 하늘 한 천 위로 무림 고수들이 뛰어다니는 상상을 하며 잔디밭을 거닐었습니다.
분수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시청에서 남대문을 거쳐 조선은행(현재 한국은행)과 <마인>에서는 M 백화점으로 나오는 미스코시(현재 신세계 백화점 본점)으로 향했습니다.
충격적인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재건 중인 숭례문(남대문)입니다. 시내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탈때 자주 보던 건물이었는데, 텔레비전에서 불길에 휩싸이던 그 모습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연도 불명의 숭례문 사진입니다. 영화 모던보이에서는 일제시대 당시의 숭례문과 주변의 풍경을 CG로 재현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 모던보이 블로그에서 그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은행(현재 한국은행)입니다. 1909년 경 대한제국 정부와 일본 황실, 한국 황실 및 개인이 자본금을 거출하고 한국은행조례(條例)에 근거해 중앙은행으로 한국은행(韓國銀行)이 설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대한제국 병합 후, 1911년 조선은행법(일본의 법률)에 따라 특수 은행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명칭은 한국은행이지요.
연도 불명의 조선은행 사진입니다.
역시 연도 불명 조선은행 사진입니다. 현재 건널목이 있는 곳 앞으로 전하들이 지나다니고 있군요. <마인> 30장 '대공의 악마'에서 무장경찰과 OOO이 조우하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OOO은 무장경찰을 피해 M백화점 본점 입구로 들어가게 되죠.
정면에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는 당시 미스코시(三越)백화점이었던 신세계 백화점 본점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미스코시 외에도 당시 경성에서 이름난 백화점인 미나카이(三中井), 조지야(丁子屋), 화신 백화점의 당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기왕 미스코시백화점에 도착하니 판타스틱 봄호 "<마인>속 경성과 경성 문화"의 한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미스코시백화점 옥상에는 옥상정원이 조성되었는데, 그곳 양식당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경성 최고의 레스토랑이었다. 미스코시백화점 옥상정원에서 유불란은 커피를 마시며, "런치"를 시켜먹는 OOO을 감시한다. "런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황세민의 점심식사는 양식이었다." - 판타스틱 봄호 225p, "<마인>속 경성과 경성 문화"
그리고 이곳은 <마인> 30장 '대공의 악마'에서 무장경찰과 조우한 OOO이 무장경찰을 피해 들어간 M백화점입니다. M백화점의 폐관시간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도 불구하고 권총을 휘두르며 손님들을 헤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급히 옥상으로 올라간 OOO과는 달리 저는 느긋하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커피숍 건물 옆으로 조형물이 세워진 정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생각했던 것 처럼 정원에서 커피나 식사를 하는 사람은 없었고 다들 커피숍 건물 안에서 끽다와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건물 쪽은 사람들의 이목도 있고해서 찍을 수 없고 정원 모습만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흠 여기에서 런치를 먹었단 말이지? 그리고 OOO은 애드벌룬을 타고 도주하고..."
당시에는 이런 풍경이었겠죠. 판타스틱 봄호 227p에 실린 이미지입니다.
미스코시백화점 옥상은 아니었겠지만 위의 사진 속에서 커피잔을 들고 있는 최승희 같은 유명인도 어쩌면 미스코시백화점 옥상 정원을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이후 남대문 시장을 거쳐 당시의 본정(本町, 혼마치)이었던 충무로와 명치정(明治町, 메이지마치)였던 명동 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하단의 천주교당이 바로 명동성당입니다. 당시의 본정의 풍경은 이랬다고 합니다.
아래의 사진은 정확히 위의 사진과 정확히 매치되는 사진은 아닙니다. 제가 지나다닌 명동 일대와 골목입니다.
이렇게 명동을 거쳐 청계천을 지나 서린동으로 들어섰습니다. 서린동은 김수일이 머물던 중앙아파트가 있던 곳으로 현재 SK 본사 뒤입니다.
현재는 재개발 중이더군요. 저낡고 허름한 건물이 혹시 중앙아파? 아니면 당시의 옛 건물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서린동을 지나면서 급격하게 허기를 느껴 관철동 골목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관철동은 백영호의 고문 변호사 오상억의 사무실이 있는 동네이지요. 관철동을 지나 잠시 들린 곳은...
"우리은행 종로지점은 190년 7월 3일 건립된 우리나라 은행 최초의 근대건축물입니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당시에는 광통관이라고 불린 건물로 위키피디아 광통관 항목에 자세한 설명이 실려 있습니다. 서울문화재 사이트에서도 동영상과 함께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걸어가서 이르게 된 곳은 바로...
보신각입니다. 매해 정초 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죠. 그리고 바로 건너편에...
우뚝 솟은 이 건물은 종로타워 빌딩입니다. 길을 건너가 보니 바위가 훈계를 합니다.
예, 바르게 살겠습니다. ㅠㅠ 그런데 그 아래 검은 이 비석은?
여기가 바로 화신백화점 터였군요. 그러고보니 저도 어린 시절 화신백화점에 가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제 기억 속에 아주 아련히 남아 있는 건물이지요. 이곳, 이곳에서 일제 시대의 화신백화점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의 이미지에 담긴 화신백화점이 모습은 1970~80년대 쯤으로 추정되는 군요. 화신백화점에서, 아니 종로타워에서 북쪽으로 쭉 올라갔습니다.
마지막 코스입니다.
쭉 올라가다보니 나온 곳은 바로 안국동네거리 입니다.
이 곳은 <마인> 14장 '사진 속의 처녀'에서 탐정 유불란이 OOO을 미행하면서 언급되는 장소입니다. OOO은 여기에서 종로쪽으로 그러니까 화신백화점이 있는 종로 네거리로 내려갑니다. 물론 유불란 역시 조용히 OOO의 뒤를 쫓지요. OOO은 이후 미스코시 그러니까 신세계 백화점이라고 추정되는 백화점 M데파트 4층에서 점심식사를 하지요.
OOO이 나온 곳이 바로 삼청동 긴 골목이니 사람들이 걸어나오고 있는 바로 저 골목이 틀림없습니다. 저 골목은 제가 정독도서관에 갈때 주로 이용하던 골목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바로 저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회동을 가기 위해 더 서쪽으로 더 걸어갔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가다보니 헌법재판소도 보이고 가회동 동사무소도 보였습니다. (사진은 찍지 않았습니다.) 가회동 성당도 지나치면서 둘러보니 한옥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한옥의 형태를 지닌 건물들과 옛 서울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골목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가회동에서 삼청공원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입니다. 길 옆으로 굉장히 커다란 규모의 저택들이 즐비하더군요. 백만장자 백영호의 저택은 삼청공원 입구에 자리잡은 삼층 양옥집이었죠. 아마 이런 저택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마인> 26장 '네번째 참극'에서는 삼청동에서 괴한의 차가 가회동 쪽으로 재빨리 사라졌다고 나옵니다. 자동차 입장에서는 내리막길인 이 길을 신나게 질주했겠죠.
가회동 쪽에서 보는 서울 시내의 전경입니다. 고층 빌딩들과 멀리 서울타워도 보이는 군요.
드디어 삼청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도착하는 데 길을 잘못 들어 남북회담본부를 지나 성균관대학교 후문까지 들어갔다 돌아왔습니다. 앗차하면 서울성곽까지 갈 뻔 했죠.
<마인>에서는 공원 입구 바로 옆에 백영호의 저택이 자리잡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요. 사진을 찍을 당시 책을 갖고 있지 않아 미처 주변을 찍지 못했습니다. 조금 아쉽네요.
삼청공원을 알리는 비석(?)입니다. 백영호와 그의 가족들은 바로 집 옆에 있는 이 공원에서 산책을 즐겼겠죠.
<마인> 26장 '네번째 참극'에서도 백영호의 딸 백정란과 그의 약혼남 문학수가 이 공원을 산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삼청공원 내부입니다. 분위기가 아주 고즈넉하더군요. 이곳을 산책하던 백정란과 문학수는 안국동 쪽으로부터 한 대의 자동차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네번째 참극이 벌어지죠.
휴일 오후라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지도 않았습니다. 초상권 침해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을 골라 사진에 담았습니다.
작품 속에 언급되는 야외 수영장은 현재는 없어진 것 같더군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삼청공원 후문 쪽으로 빠져나왔습니다.
후문 쪽에는 마치 다리처럼 보이는 산책코스가 있었습니다.
옆으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데 동행인이 귀한 적송이라고 하길래 잽싸게 찍었습니다.
우거진 나무 아래로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물이 흘러 흘러 청계천으로 이어졌다고 했던가... 정확한 정보는 아닙니다.
삼청공원 후문 쪽에서 삼청동길을 따라 삼청동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삼청동 주민회관 앞에서 어디로 갈까 고민했습니다. 마침 청와대앞길이 지도에 보였습니다. "그래 한번도 못 가봤던 청와대를 가보자." 팔관동 쪽으로 가니 과연 검은 정장을 입고 귀에는 꼬불꼬불한 이어폰을 낀 올백머리의 남자가 묻습니다. "어디 가시는 거죠?" 그 모습에 살짝 쫄았지만 억지로 평정심을 되찾고 입을 열었습니다. "아... 그냥 청와대 앞에 가보려고 하는데요. 안되나요?" 제 카메라와 얼굴을 잠시 훑어보더니 "아뇨, 괜찮습니다."하고 길을 터줍니다. 만약 못 간다고 했으면 제가 항의를 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청와대 쪽으로 이러지는 산청길로 들어서니 작고 조용한 까페도 보이고, 분위기 자체는 삼청동과 비슷했습니다.
다만 차량 통제로 인해 인적은 삼청동에 비해 거의 드문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걷다보니 드디어...
청와대 입구가 보입니다.
바로 옆의 건물 현판에는 춘추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청와대를 지나가면...
황세민 교장이 살고 있는 효자동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앞의 삼엄한 분위기도 그렇고 당시 시간이 저녁 7시 20분인 관계로 효자동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경복궁 담을 따라 내려갔죠.
점점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뚝 솟은 민속박물관 건물이 보이는 군요.
한때는 경복궁의 담장이 이어져있었지만 현재는 외 떨어진 동십자각입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이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공사중인 광화문 외벽 너머로 근정문과 경복궁 그리고 그 너머로 청와대가 보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루 동안의 1939년 <마인>에 등장하는 경성 지역 걷기가 끝났습니다. 중간 중간에 쉬고 식사한 시간까지 합쳐 5시간 정도가 걸렸으니 오전부터라면 작품 속에 언급된 곳을 모두 돌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공작부인의 집이 있는 명수대(현재의 흑석동)와 한강 인도교를 보려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 겠지만 말입니다.
종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스무해를 넘게 살았지만 처음 보는 곳이 적지 않았습니다. <마인> 덕에 덕수궁 돌담길, 기회동과 삼청동, 삼청공원 등을 제대로 거닐었습니다. 게다가 청와대까지. 작년에 한번 꼭 보고 가보고 싶었는데 인연이 닿질 않다가 <마인> 덕분에 그 근처까지나마 가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지명을 되새기면서 <마인> 속의 장면 장면들을 떠올려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영화의 경우는 아예 시각적인 정보를 제시해주니 그 촬영장소에서 영화의 장면을 되새길 뿐이지만 소설의 경우는 또 자기의 상상력을 통해 상황을 재구성해보는 재미가 있지요. 삼청동 긴 골목을 한국동 쪽을 향하여 달음박질하더니 안국동 네거리에서 종로쪽으로 걸어가서 종로 네거리를 지나 백화점 M데파트 4층에서 점심을 먹고... 삼청동 공원에 나타난 자동차에서 괴한이 권총으로 누군가를 살해하고 그 자동차는 가회동 쪽으로 사라지고... 한강 인도교를 따라 도주하던 택시는 경성역을 지나 남대문 왼편으로 급회전한 뒤 경성부청을 거쳐 태평통 조선일보사를 거쳐 광화문 근처 K여고로 사라지고... 이 미행과 추격전이 벌어지는 1939년 경성의 흔적은 70년이 지난 2009년의 성루에도 역력합니다. <마인>에 기술된 지명과 독자의 상상력의 적절한 조화는 <마인>의 재미를 더욱 배가 시킵니다. 그 뿐 아니라 <마인>을 통해 당시의 경성과 현재의 서울의 비교를 직접 발로 눈으로 해보는 것은 도시의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지로 의미와 교훈을 담아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 하지만 그저 풍경과 건물을 눈으로만 즐기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의미있는 도시 거닐기였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설과 함께 도시거닐기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마인>은 정말 좋은 소설입니다. 좋은 외국 작품들도 있겠지만 우선 서울은 한국 안에 있지 않습니까? ^^;;;
저는 개인적으로는 소설에서 언급된 미행 경로와 추적 경로를 각각 개별적으로 재현해보려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그것 역시 블로그를 통해 정리해보려합니다.
긴 스크롤의 압박 견디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澤




